정보부의 다음 수장, 알고 보니 적의 스파이
영국 정보부의 다음 수장이 될 것이라 여겨지던 남자가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를 나온 엘리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완벽한 신사. 그런데 그는 사실 30년 동안 조국을 팔아넘긴 소련의 이중스파이였다. 그가 넘긴 비밀 때문에 수많은 첩보원이 적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침내 조직이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밤, 그는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고 며칠 뒤 모스크바에서 태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킴 필비. 세계 최고의 정보 기관을 30년이나 완벽하게 속인, 냉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완벽한 신사
킴 필비의 가장 큰 무기는 암호도, 변장도 아니었다. 바로 신뢰였다.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를 나온 엘리트였고, 어떤 자리에서든 좌중을 사로잡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영국 정보부에 들어간 그는 빠르게 신뢰를 얻으며 승진을 거듭했다. 상관들은 그를 두고 언젠가 조직을 이끌 재목이라 입을 모았다. 완벽한 신사이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내부자, 그것이 그의 위장이었다. 그러나 그 반듯한 미소 아래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두 번째 얼굴이 숨어 있었다.
다섯 명의 그림자, 케임브리지 5인조
필비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에서, 다섯 명의 젊은이가 조용히 소련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훗날 케임브리지 5인조라 불리게 될 조직이다. 이들은 이념에 매료된 학생 시절, 낡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고 포섭됐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들이 훗날 흩어진 자리였다. 정보부와 정부의 핵심 부처, 그러니까 나라의 가장 깊은 심장부에 이들은 하나씩 스며들었다. 적은 국경 밖이 아니라 이미 안에 있었던 셈이다.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면서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위장을 유지했고, 이 다섯 명의 존재는 훗날 서방 정보기관에 씻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여우가 지킨 닭장
필비의 출세는 거침이 없었다. 냉전이 깊어지던 무렵, 그는 정보부 안에서 소련을 상대하는 방첩 부서의 책임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소련 스파이를 잡아내는 임무의 총책임자가, 바로 소련의 스파이였던 것이다. 여우에게 닭장을 통째로 맡긴 셈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세운 작전 계획을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모스크바로 흘려보냈다. 조직이 놓은 덫은 놓이는 바로 그 순간 이미 적에게 알려져 있었다. 소련을 잡으려는 모든 시도가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당시 영국은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냥꾼 자신이 사냥감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결백한 사람이 되다
1951년, 동료 두 명이 갑자기 소련으로 달아나면서 필비에게도 의심의 눈길이 쏠렸다. 그는 정보부를 떠나야 했지만, 그를 잡아둘 결정적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사람들 앞에서 그를 감쌌다. 자신은 그가 반역자였다는 어떤 증거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로 필비는 다시 결백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기자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복귀는 그가 얼마나 깊이 신뢰의 갑옷을 두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배신의 대가
필비가 넘긴 비밀의 대가는 참혹했다. 그가 앉은 자리는 서방이 적진에 심으려던 요원들의 명단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첫째로, 적지로 침투하던 수많은 요원이 상륙과 동시에 붙잡혔다. 둘째로, 애써 짜낸 비밀 작전들이 시작도 전에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셋째로, 그를 굳게 믿었던 동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썼다. 필비의 펜 끝에서 흘러나간 정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그가 지키는 척했던 그 명단이, 사실은 사형 명부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낮과 밤의 두 얼굴
필비에게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낮의 그는 워싱턴에 파견되어 미국 정보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국이 가장 신뢰하는 간부였다.

밤의 그는 그 회의에서 들은 모든 것을 고스란히 모스크바에 넘기는 소련의 충직한 요원이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하루 안에서, 동맹의 비밀을 지키는 척하며 바로 그 비밀을 팔아넘겼다.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 두 얼굴이 무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두 개의 진심을 동시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베이루트의 마지막 밤
1963년 겨울, 정보부는 필비의 오랜 친구 니컬러스 엘리엇을 베이루트로 보냈다. 마지막으로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어느 조용한 방에서 마주 앉았다.

필비는 오랜 친구를 지그시 바라보며, 당신이 올 줄 알고 있었다고 낮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일부를 인정했지만 결코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소련 화물선에 몸을 싣고 베이루트 항구를 조용히 빠져나갔다.

그날 이후 다시 그를 본 서방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랜 친구를 배신한 그 마지막 대화는, 훗날 첩보 역사에서 가장 씁쓸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조직은 그를 잡으러 사람을 보냈지만, 결국 그를 놓아준 셈이 되고 말았다.
두 세계의 정반대 평가
필비가 남긴 숫자들은 그 배신의 무게를 그대로 말해 준다. 그는 무려 30년 가까이 조국의 심장부에서 적을 위해 일했다.

사라진 뒤에는 25년을 모스크바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훈장을 받으며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소련은 그의 얼굴을 우표에까지 새겨 기렸다. 한쪽에서는 최악의 배신자였던 사람이, 다른 한쪽에서는 최고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같은 사람을 두고 두 세계의 평가가 이토록 정반대였던 경우도 흔치 않다. 그의 삶은 냉전이라는 시대가 한 인간을 어떻게 둘로 쪼개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변명
킴 필비는 1912년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름난 학자이자 모험가였고, 아들에게 늘 더 큰 세상을 꿈꾸게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에 사로잡혔고, 그 이상은 결국 그를 조국의 반대편으로 데려갔다.

평생 그는 자신이 배신자가 아니라 신념에 충실했을 뿐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신념의 대가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노년을 보내다 1988년 눈을 감았고, 끝내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무덤까지 가져간 비밀
그는 신념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30년 동안 모두를 속인 사람의 말을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어쩌면 그가 마지막에 보인 진심조차 또 하나의 잘 짜인 연기였을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다. 세계 최고의 정보 기관이 자기 심장부에 들어와 있던 적을 30년이나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필비가 끝내 정보부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면, 냉전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 얼마나 달라져 있었을까. 그가 무덤까지 가져간 비밀이 몇 개였는지는, 지금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