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공식, 노트 4권의 비밀
노트 4권. 공식 3,900개. 그것을 쓴 청년은 32살에 죽었다. 정규 수학 교육은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편지를 받아든 케임브리지 최고의 수학 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천재이거나, 아니면 역사상 가장 정교한 사기꾼이라고.
그는 밤새 공식들을 검증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시간이 지났다. 밤이 깊어졌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것은 진짜였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3,900개의 공식 중 수백 개는 세계 어느 수학자도 왜 맞는지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도의 잊힌 천재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다. 학위도, 정규 교육도, 인맥도 없었던 한 인도 청년이 어떻게 20세기 수학사에 가장 강렬한 흔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왜 그의 공식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수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지, 지금부터 그 놀라운 실화를 따라가 보자.
| 핵심 사실 | 수치 |
|---|---|
| 발견한 수학 공식 | 3,900개 |
| 사망 나이 | 32세 |
| 아직 미증명 공식 연구 기간 | 100년+ |
정규 교육 없는 인도 청년
1887년, 인도 남부 마드라스 관할의 작은 도시 쿰바코남.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그의 가족은 가난한 브라만 계급에 속했다. 카스트 제도상으로는 최상위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빈곤층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천을 파는 가게의 점원이었고, 어머니는 사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었다.
인도 남부의 19세기 말은 영국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다. 영국식 교육 제도가 이식되어 있었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힌두 교육과 영국식 학교가 혼재되어 있었다. 라마누잔의 가족은 깊이 신앙심이 강한 힌두교 가정이었고, 특히 어머니는 가문의 수호 여신인 나마기리 타야르를 매일 모셨다. 이 종교적 배경은 훗날 라마누잔의 수학적 영감의 원천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라마누잔이 아홉 살이 되던 해, 마을 학교 선생님들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 아이가 자신들보다 수학을 더 잘 안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직감은 정확했다. 라마누잔은 열두 살에 이미 대학 수준의 수학 교재인 시드니 로니의 평면 삼각법을 혼자서 독파했다. 그것도 단순히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정리를 도출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에는 사촌으로부터 카르의 순수 수학 개요라는 책을 빌렸는데, 이 책은 훗날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운명적 책이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학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다른 과목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어, 역사, 생리학, 산스크리트어 그 어떤 과목도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그는 마드라스 대학 입학시험에서 두 번 낙방했다. 수학 이외의 모든 과목에서 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장학금도 잃었다. 졸업장도, 학위도 없었다. 인도 사회에서 학위 없는 청년은 사실상 어떤 직업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가정교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노트는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석판에 분필로 공식을 적고, 외워둔 다음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가난 속에서도 수학에 대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노트 속 3,900개의 공식들
학위도 없이 취직도 안 되는 라마누잔에게 책 한 권이 있었다. 영국 수학자 조지 슈브리지 카르가 쓴 순수 수학의 결과들 개요. 총 5,000개에 가까운 공식이 증명 없이 나열된 책이었다. 이 책은 사실 학문적으로 그리 평가가 높지 않은 일종의 공식 모음집에 가까웠다. 그러나 라마누잔에게 이 책은 우주의 비밀이 적힌 마법서와 같았다.

라마누잔은 이 공식들을 하나씩 직접 증명해 나갔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증명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식의 진위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책의 공식을 증명하다 보니, 그 책에도 없는 새로운 공식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 노트가 한 권, 두 권, 세 권, 네 권으로 늘어났다. 노트의 각 페이지에는 숫자와 기호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어떤 페이지에는 증명 과정이, 어떤 페이지에는 결과 공식만 적혀 있었다. 그는 종종 잠을 자다가 일어나 무언가를 휘갈겨 적기도 했다.
훗날 학자들이 이 노트들을 분석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당시 수학계가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또는 수십 년 후에야 다른 수학자들이 독자적으로 발견하게 될 공식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 라마누잔 노트 4권의 규모 | 수치 |
|---|---|
| 노트 권수 | 4권 |
| 수록된 공식 수 | 3,900개 |
| 사망 당시 미증명 공식 비율 | 약 30% |
특히 정수론, 무한급수, 연분수, 모듈러 형식의 분야에서 라마누잔의 공식들은 20세기 수학계를 수십 년이나 앞서 있었다. 예를 들어 그가 발견한 원주율 파이를 계산하는 무한급수 공식은 오늘날 컴퓨터로 원주율을 계산하는 가장 빠른 알고리즘의 기초가 되었다. 그가 정의한 모의 세타 함수는 현대 수론과 끈 이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어떻게 이런 공식들을 떠올렸는지였다. 그는 증명 과정을 거의 적지 않았다. 결과만 적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답을 받아 적은 것처럼.
나마기리 여신의 계시
사람들이 물었다. 이 공식들이 어디서 왔냐고. 라마누잔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꿈에서 여신이 알려줬다고.
라마누잔이 믿는 힌두교 신, 나마기리 타야르. 이 여신은 남인도 타밀나두 지역에서 숭배되는 비슈누 신의 배우자 락슈미의 화신 중 하나로, 지혜와 학문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라마누잔의 가족은 대대로 이 여신을 모셨고, 라마누잔 본인도 매우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이 여신이 꿈속에서 자신에게 공식을 알려준다고 진지하게 믿었다. 한 번은 이렇게 설명했다.
“여신이 제 혀에 직접 공식을 써 주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노트에 받아 적었다고 했다. 어떤 날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반쯤 잠든 상태에서 숫자들을 휘갈기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처음에는 그가 미친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가 적은 공식들이 모두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점차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현대 신경과학자들과 수학사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다양하게 해석한다. 가장 일반적인 분석은 이것이 무의식적 수학 처리 능력의 표출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극도로 발달한 수학적 직관이 꿈의 형태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잠자는 동안에도 활발하게 정보를 처리하며, 깨어 있을 때 풀지 못한 문제의 해답이 꿈속에서 떠오르는 사례는 화학자 케쿨레의 벤젠 고리 발견 등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또 다른 해석은 그가 일종의 자폐 스펙트럼 또는 수학적 천재성과 연결된 특수한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정규 교육의 틀에 갇히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유롭게 수학적 패턴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그 공식들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것은, 인도가 아닌 영국이었다.
세 번의 거절과 마지막 편지
라마누잔은 자신의 공식들을 인정받고 싶었다. 1912년, 그는 마드라스 항만청 사무국에서 월급 25루피의 서기직을 얻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일자리였지만, 그는 점심시간마다 책상 한쪽에서 수학을 했다. 상사였던 라마찬드라 라오와 동료들도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채고 그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 수학자 세 명에게 차례로 편지를 보냈다.
- 1차 시도: 수학자 베이커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무응답이었다.
- 2차 시도: 수학자 홉슨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무시당했다.
- 3차 시도: 수학자 힐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거만한 답장을 받았다. 이미 알려진 내용이니 연구를 그만두라는 내용이었다.
- 마지막 시도: 케임브리지 하디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세 번의 거절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포기하고도 남았을 무게였다. 식민지의 가난한 무명 청년이 영국 최고 수학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게다가 그의 영어 실력은 완벽하지 않았고, 수학 표기법도 정통 학계의 것과 달랐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913년 1월, 마지막으로 한 명에게 편지를 썼다.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고드프리 하럴드 하디 교수. 당시 35세의 하디는 영국 수학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정수론과 해석학 분야에서 이미 명성을 쌓고 있었고, 수학적 엄밀성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학자였다.

편지 안에는 약 9페이지에 걸쳐 120개의 수학 공식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증명은 없었다. 설명도 없었다. 공식만 있었다. 그리고 한 문장이 덧붙여 있었다.
“저는 수학 이외의 과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공식들은 제 것입니다.”
하디의 충격, 천재인가 사기꾼인가
1913년 1월 16일 아침.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연구실. 수학자 하디는 우편함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인도 마드라스 발신이었다.
처음 편지를 훑어봤을 때, 반응은 무관심이었다.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인도 청년. 증명 없는 공식 더미. 하디는 이런 종류의 편지를 종종 받아왔다. 대부분 자칭 천재라고 주장하는 아마추어들이 보낸, 이미 오래전에 증명된 공식이거나 명백히 틀린 내용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막 내려놓으려던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 공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형태였다. 그것은 어떤 무한급수에 관한 공식이었는데, 형태가 너무나 기이했다. 만약 이 공식이 맞다면,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 사기꾼 가능성 | 천재 가능성 |
|---|---|
| 증명도 없이 이런 공식을 꾸며낼 수 있을까? | 검증할수록 모두 맞는 공식들 |
그는 편지를 다시 들었다. 첫 번째 공식을 검증했다. 맞았다. 두 번째 공식. 맞았다. 세 번째, 네 번째. 모두 맞았다.
그날 밤, 하디는 동료 수학자 존 에덴서 리틀우드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리틀우드는 하디의 학문적 동료이자 평생의 친구로, 두 사람은 수학사에 길이 남는 하디-리틀우드 공동 연구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밤새 공식들을 검토했다. 어떤 공식은 즉시 검증할 수 있었고, 어떤 공식은 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할 수 없었지만, 수치적으로 계산해 보면 정확히 맞았다. 또 어떤 공식은 너무나 새롭고 기이해서, 그들이 평생 본 적도 없는 종류였다.
새벽이 되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하디가 말했다.
“이것들은 사기꾼이 만들 수 있는 공식이 아닙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런 공식들은 적어도 1급 수학자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진짜로 발견한 것이지, 추측해서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런 공식을 거짓으로 꾸며낸다는 것은, 그 사기꾼 자체가 라마누잔만큼 위대한 수학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 독자적으로 발견한, 진짜 수학이었다. 그것도 식민지 인도의, 학위도 없는, 겨우 25세의 청년이 발견한 것이었다.
케임브리지에서의 5년
하디는 즉시 라마누잔에게 답장을 보냈다. 케임브리지로 오라고. 그는 영국 정부와 마드라스 대학에 압력을 넣어 라마누잔에게 장학금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라마누잔은 주저했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던 그는 바다를 건너는 것이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믿었다. 당시 정통 힌두교에서는 바다를 건너면 카스트 신분을 잃는다는 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도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꿈에서 가문의 수호 여신 나마기리를 보았다고 했다. 여신이 직접 “내 아들의 길을 막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제야 아들의 영국 유학을 허락했다. 결국 1914년 3월, 라마누잔은 영국 SS 네바사호에 올랐다. 한 달여간의 항해 끝에 그는 4월 14일 런던에 도착했다.
처음 본 케임브리지. 3월의 영국은 춥고 낯설었다. 인도 남부의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 그에게 영국의 추위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했다. 당시 케임브리지에는 인도식 채식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이 거의 없었고, 그는 직접 자신의 방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게다가 1914년 7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전역에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었고, 채식 식재료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수학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하디, 리틀우드와 함께한 5년 동안 라마누잔은 3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합성수의 성질, 분할 함수의 점근 공식, 모듈러 형식 등 현대 수학의 중요한 분야에 결정적 기여를 한 논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와 하디의 협업은 독특했다. 라마누잔은 직관으로 공식을 떠올렸고, 하디는 그것을 엄밀하게 증명하는 작업을 맡았다. 하디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라마누잔이 어떤 공식을 보여주면, 나는 그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어떻게 증명할지는 몰랐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그에게 학사 학위도 석사 학위도 없음에도 1916년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합성수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1918년, 라마누잔은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인도인 최초였다. 더욱이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우로도 선출되었는데, 이는 케임브리지 역사상 인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영예였다.
1729,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숫자
케임브리지에 온 지 4년이 지난 1918년. 라마누잔은 병원에 있었다. 영국의 추운 날씨, 식량 부족,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그의 건강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의사들의 진단은 결핵이었다. 일부 현대 의학자들은 그의 증상이 결핵이 아닌 간 흡충증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당시로서는 결핵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디가 런던 푸트니에 있는 요양소로 병문안을 왔다. 택시에서 내리며 하디가 말했다.
“1729번 택시를 타고 왔는데, 참 재미없는 숫자군요.”
하디는 일종의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그는 라마누잔과 만날 때마다 어떤 숫자에서 흥미로운 성질을 찾는 게임을 하곤 했다.
병상의 라마누잔은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교수님. 아주 흥미로운 숫자입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입니다.”
| 1729, 하디-라마누잔 수 | 계산 |
|---|---|
| 1의 세제곱 + 12의 세제곱 | = 1,729 |
| 9의 세제곱 + 10의 세제곱 | = 1,729 |
| 의미 | 두 큐브합으로 두 가지 방법으로 표현 가능한 최솟값 |
1의 세제곱은 1, 12의 세제곱은 1,728이다. 합하면 1,729. 그리고 9의 세제곱은 729, 10의 세제곱은 1,000이다. 합하면 1,729. 이렇게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연수 중 가장 작은 수가 바로 1,729인 것이다.
하디는 나중에 회고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택시 번호에서 수학을 발견하는 사람. 그것이 라마누잔이었다고. 이 일화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라마누잔의 수학적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보통 사람에게 1729는 그저 평범한 네 자리 숫자일 뿐이지만, 라마누잔의 머릿속에서는 그 숫자가 가진 모든 수학적 성질이 즉시 떠올랐던 것이다.
오늘날 1,729는 전 세계 수학자들 사이에서 하디-라마누잔 수로 불린다. 이 수의 개념은 더 일반화되어, n번째 택시수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즉, n가지 다른 방식으로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수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정수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역사상 가장 자연스러운 수학자
하디는 평생 수학자들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자신은 25점이라고 했다. 자신의 동료 리틀우드는 30점이라고 했다. 당시 세계 최고 수학자라 평가받던 독일의 다비트 힐베르트는 80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라마누잔은? 하디는 망설이지 않았다.
“라마누잔은 제가 아는 한, 가장 자연스럽게 수학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 고드프리 하럴드 하디, 케임브리지 수학 교수
100점이었다. 그것도 만장일치의 100점이었다.
하디는 덧붙였다. 라마누잔의 공식들은 증명 전에도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나 이상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기묘해서, 아무도 상상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수학적 진리만이 그런 형태를 가질 수 있었다.
하디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 인생 최대의 발견은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 수학계의 최고봉에 선 하디가, 자신의 모든 학문적 업적보다 한 인도 청년을 알아본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라마누잔의 천재성에 대한 진심 어린 경의의 표현이었다. 하디는 자신과 같은 수학자는 노력하면 만들어질 수 있지만, 라마누잔과 같은 수학자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존재라고 보았다.
32살의 마지막 날들
1919년, 라마누잔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핵으로 진단받은 그의 폐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다. 영국의 추운 기후, 전쟁 중 식량 부족, 그리고 채식주의 식단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던 환경이 모두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그는 결국 인도로 돌아왔다. 결핵이 너무 심했다. 마드라스의 집에 누워, 그는 마지막까지 수학을 놓지 않았다. 그 침대에서 쓴 노트가 훗날 잃어버린 노트라고 불리게 된다.
- 1919년 귀국: 결핵 악화로 인도 귀환
- 마지막 노트: 침대에서 쓴 공식들, 훗날 “잃어버린 노트”라 불린 약 100페이지의 원고
- 1920년 4월 26일: 32세의 나이로 사망
가족에게 그는 말했다.
“제가 케임브리지에서 배운 건 수학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였습니다.”
이 말은 그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영감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깊은 통찰이기도 했다.
1920년 4월 26일.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32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손 옆에는 노트가 있었다. 그가 죽기 며칠 전까지도 새로운 공식을 계속 적었다는 사실이 가족과 친구들의 증언으로 전해진다.
부고를 들은 하디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라마누잔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학이 가장 큰 보석을 잃었다.” 하디는 평생 라마누잔을 그리워했고, 그가 남긴 공식들을 정리하고 증명하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바쳤다.
잃어버린 노트의 귀환
라마누잔이 죽고 56년이 지난 1976년. 미국 수학자 조지 앤드루스가 영국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오래된 서류함을 정리하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약 100페이지 분량의 낡은 노트. 라마누잔의 마지막 수학이었다. 이 노트는 그가 인도로 돌아간 후 침대에서 쓴 마지막 작품으로, 영국으로 다시 보내져 보관되어 오다가 잊혀졌던 것이다. 학계에서 그 존재가 잊혀진 채 약 반세기 동안 도서관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앤드루스는 훗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웠다고. 라마누잔의 필체는 독특했고, 그가 사용한 표기법은 정통 수학계의 것과 달랐다. 그러나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노트 하나만으로도 수학계 연구자들이 수십 년을 연구할 수 있는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 1920년 라마누잔의 노트 | 2024년 현대 수학 및 물리학 |
|---|---|
| 죽기 직전 침대에서 쓴 공식들 | 블랙홀 이론과 암호학에 활용 중 |
특히 이 잃어버린 노트에 담긴 모의 세타 함수는 21세기에 들어와 현대 수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2002년 네덜란드 수학자 산더 즈위거스가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 함수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냈고, 이후 모의 세타 함수는 끈 이론, 블랙홀 엔트로피 계산, 양자 중력 이론 등에서 핵심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발견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트의 공식들은 여전히 분석 중이다. 그리고 현재 물리학의 블랙홀 이론, 암호학, 컴퓨터 과학에서 라마누잔의 공식들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규 교육도 없이, 신의 계시만으로 쓴 공식들이 100년 후의 첨단 과학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분할 수 점근 공식은 현대 암호학의 기초가 되었고, 컴퓨터로 원주율 파이를 계산하는 가장 빠른 알고리즘은 그의 무한급수에서 유래한다. 1987년 일본의 가나다 야스마사가 그의 공식을 이용해 원주율을 1억 자리까지 계산하는 데 성공했고, 오늘날 슈퍼컴퓨터들도 여전히 라마누잔의 공식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마치며
라마누잔이 죽은 지 10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수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900개의 공식 중 수백 개는 아직 인류가 왜 맞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신이 알려줬다는 그 공식들을, 우리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천재 수학자의 일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의 안목이 어떻게 인류 지성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우화다. 만약 하디가 라마누잔의 편지를 다른 세 수학자처럼 무시했다면, 인류는 20세기 수학의 가장 빛나는 보석을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의 이야기는 정규 교육과 학위, 출신 배경이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식민지 인도의 가난한 청년, 두 번이나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낙제생, 학위도 없는 항만청 서기. 이 모든 라벨이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가둘 수 없었다.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린다. 라마누잔처럼, 학위도 배경도 없지만 누가 봐도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무시하겠는가, 아니면 하디처럼 기회를 주겠는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시기 바란다. 이 채널에는 이처럼 잊혀졌지만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있다.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
이 글의 원본 영상을 확인하세요. 영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