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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워든클리프 타워의 비극: J.P. 모건이 끊어버린 100년 전 무선 전력의 꿈

테슬라 워든클리프 타워의 비극: J.P. 모건이 끊어버린 100년 전 무선 전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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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늦어진 혁명

15만 달러. 한화로 약 20억 원. 이 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1901년, 한 천재가 실제로 그 일을 시도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전기를 무료로 공급하는 것. 그러나 그 꿈은 단 한 사람의 결정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30미터 높이의 탑은 폭약과 함께 무너졌고, 천재는 홀로 뉴욕의 낡은 호텔방에서 생을 마쳤다. 그 천재의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그리고 그의 꿈을 끊어버린 사람의 이름은 J.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었다.

항목수치
모건의 초기 투자15만 달러
탑 붕괴 연도1917년
늦어진 혁명약 100년

이 글은 단순히 한 발명가의 실패담이 아니다. 자본의 논리와 인류 보편적 이상이 충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 충돌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두 거인의 만남

1900년 가을, 뉴욕. 당시 세계 최고의 금융가 J.P. 모건과 세기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투자 협상 중 하나였다.

테슬라는 이미 교류 전기 시스템(AC, Alternating Current)을 발명하여 에디슨(Thomas Edison)과의 이른바 ‘전류 전쟁(War of the Currents)‘에서 승리한 인물이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조명을 모두 교류 전기로 밝힌 사람도 그였다. 1895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 발전소를 설계해 인류 최초로 대규모 송전망의 시대를 열었다. 뉴욕 전체에 전기를 공급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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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은 그 이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모건은 테슬라의 라이벌이었던 에디슨의 회사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이후 GE)의 주요 투자자였다. 그러나 모건은 사업가였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테슬라가 내민 제안서는 단 한 줄이었다. 무선으로 전기를 전송한다. 모건은 안경을 고쳐 쓰며 잠시 침묵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테슬라는 그 침묵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모건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무선 전기가 가능하다면, 자신이 보유한 구리 광산과 송전선 회사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만약 이 기술이 실패한다면, 경쟁자들은 어떻게 묶어둘 수 있는가.

워든클리프의 꿈

테슬라의 계획은 경이로웠다. 롱아일랜드(Long Island) 해안의 쇼어햄(Shoreham) 부지에 거대한 탑을 세우는 것. 그 탑에서 전기를 지구 전체에 무선으로 송신한다는 구상이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워든클리프 타워(Wardenclyffe Tow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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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이론적 근거는 명확했다. 지구 자체를 거대한 도체로 사용하고, 대기의 상층부와 지면 사이의 전위차를 이용하면 전선 없이도 에너지를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의 실험실에서 수백만 볼트의 인공 번개를 만들어내며 이 가설을 검증한 바 있었다. 1899년의 그 실험에서 테슬라는 25마일 떨어진 곳의 전구 200개를 무선으로 점등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모건에게 설명했다.

“이 탑이 완성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전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모건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렇다면, 전기를 파는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법니까?”

테슬라는 그 질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인류에게 무료로 전기를 나눠주는 것, 그것이 목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건에게 그 질문은 핵심이었다. 이익을 측정할 수 없는 사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건은 15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테슬라의 천재성을 믿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른 계산이 있었다. 당시 모건은 무선 통신 시장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다. 만약 테슬라의 기술이 무선 통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투자 가치가 있었다. 즉 모건이 사들인 것은 ‘무료 전기’가 아니라 ‘무선 전신 사업’이었다.

항목수치
탑 높이30m
모건 투자액15만 달러
착공 연도1901년

테슬라와 모건이 본 것은 같은 청사진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인류의 해방을, 다른 한 사람은 시장의 독점을 보고 있었다. 같은 종이 위에 그려진 두 개의 다른 미래. 그것이 비극의 첫 번째 균열이었다.

마르코니의 등장

공사는 시작되었다. 테슬라는 밤낮없이 일했다. 30미터 높이의 거대한 목조 구조물 위에 거대한 돔이 얹혔고, 지하에는 뿌리처럼 깊은 갱도가 파였다. 작업 인부는 100명을 넘었다. 테슬라는 자신의 모든 명예와 재산을 이 탑에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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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01년 12월 12일, 예상치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탈리아의 발명가 구글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영국 콘월에서 캐나다 뉴펀들랜드까지 약 3,400km에 이르는 대서양 횡단 무선 통신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모스 부호로 알파벳 ‘S’를 보낸 단순한 신호였지만, 그 의미는 거대했다.

뉴욕의 신문들은 일제히 마르코니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모건의 사무실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테슬라는 냉정하게 대응했다. 마르코니가 사용한 장비 대부분은 자신의 17개 특허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르코니의 송신기는 테슬라의 1897년 미국 특허(645,576번 및 649,621번)에 기재된 회로 구성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실제로 1943년 미국 대법원은 테슬라가 사망한 직후 마르코니의 핵심 특허를 무효화하고 무선 통신의 진짜 발명자가 테슬라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40여 년 뒤의 일이었다. 1901년의 대중에게 마르코니는 영웅이었고, 테슬라는 아직 탑을 짓고 있는 몽상가였다.

자본은 감정을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 자본의 감정은 마르코니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무선 통신만 필요했다면 굳이 30미터짜리 탑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 모건의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모건의 마음이 돌아서다

1902년부터 모건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추가 자금 요청에 답변이 늦어졌다. 중간 보고를 요구하는 서신이 줄어들었다. 모건의 주변에서는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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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측 관계자의 발언이 전해졌다.

“마르코니가 앞서 나갔어. 그 사람을 지원하는 게 낫겠어.”

테슬라는 그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 발전기가 들어섰다. 지하 16미터 깊이의 우물이 파였다. 테슬라는 이 지하 구조물이 워든클리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구의 진동수와 공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위로 솟은 탑만이 아니라 땅속 깊이 박힌 ‘뿌리’가 필요했다. 탑은 점점 높아졌다. 테슬라는 확신했다. 탑이 완성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1902년, 모건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 추가 자금 요청 답변 지연: 모건은 테슬라의 편지에 대한 회신을 미루기 시작했다.
  2. 마르코니 지원 여론 형성: 월스트리트의 자본이 마르코니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3. 공사 현장 자금 고갈: 워든클리프 부지에서는 인부들의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돈이 바닥나고 있었다. 조용히, 빠르게. 그러나 테슬라는 이 변화를 인정하기 거부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비전이 옳다고 믿었다. 천재가 가진 가장 위험한 자산은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확신이라는 말이 있다. 테슬라는 그 함정에 빠지고 있었다.

절박한 50통의 편지

테슬라는 편지를 썼다. 한 통, 두 통, 열 통, 스무 통. 모건에게 보낸 편지는 총 50통이 넘었다. 워든클리프 사료보존회와 모건 도서관의 기록에 따르면, 1900년부터 1904년 사이에 테슬라가 모건에게 직접 또는 그의 비서를 통해 보낸 서신은 50여 통에 이르며, 일부는 아직도 모건 도서관 박물관(The Morgan Library & Museum)에 원본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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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점점 절박해졌다. 처음에는 기술적 성과를 보고했다. 중반부에는 추가 자금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나중에는 애원에 가까운 문장들이 등장했다.

“모건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테슬라의 자존심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한때 에디슨에게 “당신의 50,000달러는 농담이었나요”라고 당당히 받아칠 수 있었던 그가, 이제는 자본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모건은 마침내 한마디로 답했다.

“테슬라 씨, 나는 자선가가 아닙니다.”

단 두 줄이었다. 테슬라는 그 편지를 손에 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꿈이 단 두 줄에 의해 거절당한 순간이었다.

이 짧은 답장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 문장으로 종종 인용된다. 모건은 박애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1901년 미국 철강 회사(U.S. Steel)를 14억 달러에 설립하여 미국 최초의 10억 달러 기업을 만든 인물이며, 1907년 금융 공황 때는 자신의 사재를 풀어 미국 경제를 구해낸 사실상의 중앙은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시장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 안에서의 행동이었다. 시장 바깥의 호의는 그의 사전에 없었다.

수익화할 수 없는 꿈

1903년, 모건은 공식적으로 추가 투자를 거절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무선 전기 전송은 수익화 모델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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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을 통해 전기를 팔 수 있다면, 그것은 사업이었다. 검침원이 가정을 방문해 사용량을 측정하고, 청구서를 발송하고, 미납자에게는 전선을 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 전기를 뿌려버리면, 누구도 요금을 낼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기를 측정하고 과금할 것인가. 어떻게 무료로 흐르는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 것인가.

모건은 사업가였다. 천재의 꿈을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였다. 그의 결정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오픈 소스가 아닌 폐쇄형 플랫폼이 살아남고, 무료 백과사전이 아닌 광고 기반 검색 엔진이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도달하는 시대. 모건의 선택은 단지 한 명의 자본가의 선택이 아니라, 그 이후 100년의 자본주의가 따르게 될 패턴의 시작이었다.

테슬라는 다른 투자자들을 찾아다녔다. 록펠러(John D. Rockefeller), 카네기(Andrew Carnegie), 애스터(John Jacob Astor IV). 모두 고개를 저었다. 모건이 거절한 사업에 투자할 사람은 없었다. 월스트리트에서 모건의 말은 곧 법이었다. 더구나 테슬라는 자신의 옛 후원자였던 애스터에게도 상당한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 투자를 받기는 더욱 어려웠다.

워든클리프 공사는 사실상 멈췄다. 탑은 30미터 높이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인부들은 떠났고, 거대한 돔은 비를 맞으며 녹슬어가기 시작했다. 한때 인류의 미래를 약속했던 구조물은, 이제 롱아일랜드의 외로운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30미터 탑의 최후

1915년, 테슬라는 파산 신청을 했다. 워든클리프 부지는 채권자들에게 넘어갔다. 부지의 새 주인은 워든클리프의 인근 호텔이었다. 호텔은 빚 대신 받은 이 거대한 폐허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고, 결국 가장 단순한 답을 골랐다.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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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17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그날. 30미터 높이의 워든클리프 타워가 폭약에 의해 무너졌다. 탑의 철재를 팔아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일부 자료에서는 정확한 폭파 시점이 1917년 여름이었다고 기록되며,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독일 스파이가 이 거대한 무선 송신탑을 이용할지 모른다는 군 당국의 우려도 폭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항목시점
테슬라 파산 선언1915년
탑 폭파 철거1917년
꿈에 바친 세월약 12년

테슬라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다. 하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신경 쇠약으로 쓰러졌다고 전해진다. 12년간 쏟아부은 꿈이 단 몇 시간 만에 잔해가 되어버렸다. 현장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풀밭 위의 빈 땅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탑이 무너진 후 약 100년이 지난 2013년, 사이언스 채널의 코미디언 매슈 인먼(The Oatmeal)이 주도한 크라우드펀딩이 단 9일 만에 100만 달러를 모아 워든클리프 부지를 매입했다. 그곳은 현재 테슬라 과학 센터(Tesla Science Center at Wardenclyffe)로 보존되고 있다. 한 자본가가 끊은 꿈을 다른 시대의 시민들이 다시 이어 붙인 셈이다.

테슬라의 마지막

그 후 테슬라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그다음에는 세인트 레지스(St. Regis), 그리고 마지막에는 뉴요커 호텔(Hotel New Yorker). 방세도 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한때 에디슨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천재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의 좁은 방에서 혼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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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고 한다. 만년의 테슬라는 매일 저녁 뉴욕 공립 도서관 앞으로 가서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었고, 특히 한 마리의 흰 비둘기를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며 깊이 사랑했다. 그는 “그 비둘기를 사랑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듯 사랑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년의 테슬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언젠가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943년 1월 7일. 87세의 테슬라는 뉴요커 호텔 3327호실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관상동맥 혈전증이었다. 발견된 것은 사망 다음 날, 호텔 객실 청소부에 의해서였다.

그가 죽고 난 뒤, 미국 정부는 즉시 그의 연구실로 들어가 모든 서류를 가져갔다. 미국 외계인 자산 관리국(Office of Alien Property)이 80상자에 달하는 그의 노트, 도면, 실험 장비를 압수했다. 그 서류들의 일부는 공식적으로 1952년 그의 조카에게 반환되어 현재 베오그라드의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일부는 지금도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만년에 연구했다고 주장한 ‘죽음의 광선(death ray)’ 즉 입자 빔 무기의 설계도는 여전히 기밀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며: 100년 후, 우리는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을 무선으로 충전한다. 칫솔, 스마트워치, 무선 이어폰의 케이스도 모두 무선 충전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전기차는 도로에서 무선으로 충전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도로 매립형 무선 충전 시스템의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주 공간에서 태양광 발전을 한 뒤 마이크로웨이브로 지상에 전송하는 우주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Space Solar Power)도 미국 에너지부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 의해 실증 단계에 들어가 있다.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연구실에서 개발 중이다. 테슬라가 꿈꿨던 세상이 100년이 지나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1903년, 모건이 투자를 계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전기 요금을 내지 않는 세상이 100년 전에 왔을 수도 있었다. 화석 연료 채굴이 지금처럼 가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기후 위기의 시계는 지금과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가정에 불과하다. 무선 전력 전송이 실제로 지구 단위의 송전에 적합한 기술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과학적 회의론이 존재한다. 테슬라가 옳았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류의 진보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누구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이다. 모건의 “나는 자선가가 아닙니다”라는 한마디는 10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신약 가격, 데이터 사용료, 인공지능 모델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이 질문을 남긴다. 천재의 꿈과 자본의 논리, 어느 쪽이 옳았을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시기 바란다. 이 블로그에는 역사 속 잊힌 천재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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